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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리고 일상

원주 안창리 을미의병 봉기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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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OMdT0j5o2Y

 

원주 안창고개에 있는 을미의병봉기기념탑은 한말 을미의병기에 강원도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킨 지역을 기념하는 탑이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이어진 단발령으로 인해 일찍이 화서학파의 유생들을 중심으로 시국을 개탄하며 의병항쟁을 일으키기로 뜻을 모았다. 그리하여 안승우·이춘영·김백선은 1896년 1월 12일 원주 안창리에서 의병부대를 결성하였다.

1895년 단발령이 내려지자 여주의 곡수(曲水)에 살고 있던 이춘영(李春永)은 고향인 지평으로 가서 안승우(安承禹)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안승우는 당시 제천에 있었기 때문에 집에 없어 그의 부친인 안종응에게 대책을 물었다. 안종응은 이춘영에게 포군 대장 김백선(金伯善)이 큰 뜻을 품고 있음을 알리고 그를 찾아가 보도록 하였다.

당시 김백선은 1894년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하여 지방 포수 600여명을 모아 포군을 조직하였다. 이춘영은 그날 밤 김백선을 만나 의병을 함께 일으키기로 약속하고 김백선 휘하의 포수들을 의병에 참가하게 하였다. 김백선이 군사를 책임지고 이춘영이 재물을 책임지기로 하고 1896년 1월 10일 안창에서 모이기로 하였다.

 

 

한편 안종응은 이춘영이 의병을 일으킨다는 소식을 듣고 제천 장담에 있던 아들 안승우를 불러 의병에 가담토록 하였다. 또한 이춘영은 김백선과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정하고, 장담에 있던 류인석에게 알리자 류인석은 곧 안승우를 지평에 보내어 의병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이에 안승우는 이범직(李範稷)·원철상(元喆常)·신지수(申芝秀) 등으로 하여금 안창에 모이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안승우·이춘영·김백선은 1896년 1월 12일 안창리에서 의병부대를 결성하고 원주사람인 김사정(金思鼎)을 총독소모장으로 삼고, 박운서(朴雲瑞)를 도령장으로 삼았다. 이들이 원주에서 의병을 더 모집하여 1,000여 명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원주관아를 점령하니 전국 각지에서 호응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이어서 1월 17일 제천을 점령한 후 단양출신 이필희(李弼熙)를 대장으로 추대하고 이춘영은 중군장이 되었다. 제천을 거점으로 삼은 의병부대는 1월 22일 단양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나 관군과 일본군의 집요한 공격으로 포군들이 영남지역으로 흩어지자 이필희는 지휘권을 이춘영에게 넘겼다. 이후 이춘영은 영남지역에 내려갔던 포군들을 다시 수습하고 제천과 원주 등지에서 포군을 모아온 안승우와 영월에서 합세한 후 류인석(柳麟錫)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여 연합의병부대를 조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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